기획서 초안은 10분, 광고 소재 20개는 한 시간이면 나옵니다. AI 덕분에 무언가를 만드는 속도는 불과 1~2년 사이에 몰라보게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분기 KPI도 그만큼 빠르게 움직였나요?
만드는 속도와 성장하는 속도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간격을 메우는 방식을 에이전틱 그로스(Agentic Growth)라고 부르고, 뜻과 등장 배경, AI 에이전트에게 성장을 맡기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차례로 정리합니다.
1. 에이전틱 그로스(Agentic Growth)란?
에이전틱 그로스(Agentic Growth)는 AI 에이전트가 비즈니스 데이터를 이해하고, 변화를 발견해 실행하고, 그 결과에서 다시 배우며 성장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지금까지 기업의 AI 도입은 대부분 사람이 하던 일 하나를 빠르게 대신하는 데 머물렀습니다. 보고서 요약, 문구 작성, 쿼리 작성이 대표적입니다. 에이전틱 그로스는 맡기는 단위부터 다릅니다. 작업 하나가 아니라 '이해, 실행, 학습'으로 이어지는 과정 전체를 에이전트가 함께 돌리고,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중요한 결정을 승인합니다.
표의 세 번째 줄이 핵심입니다. 에이전틱 그로스에서 성장 속도를 정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입니다.
2. AI를 도입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이유
이유는 병목이 옮겨 갔기 때문입니다. AI가 줄여 준 것은 만드는 시간인데, 지금 성과를 가로막는 것은 이해하고 배우는 시간입니다.
숫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MIT 연구진은 기업의 생성형 AI 시범 과제 가운데 매출을 눈에 띄게 끌어올린 것은 약 5%이고, 대부분은 손익에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이 꼽은 원인도 모델 성능이 아니라 도구와 조직이 결과에서 배우지 못하는 '학습 격차'였습니다. 맥킨지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88%가 업무 한 곳 이상에 AI를 정기적으로 쓰고 있지만, 전사 확산을 시작한 곳은 약 3분의 1에 그쳤습니다.
마케팅팀의 장면으로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AI 덕분에 광고 소재를 주 5개에서 50개로 늘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소재가 왜 이겼는지 정리하는 일은 여전히 월말 보고서 한 장에 기대고 있습니다. 실행은 10배가 됐는데 배우는 주기는 한 달 그대로입니다. 쌓이는 것은 소재의 양이고, 다음 소재를 고르는 판단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실행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실행이 끝날 때마다 네 가지 질문에 답이 나와야 합니다.
- 무엇이 달라졌는가?
- 왜 KPI가 움직였는가?
- 어떤 실행이 효과가 있었는가?
-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조직에서 이 질문은 사람이 대시보드를 뒤지며 답합니다. "그러면 분석가를 더 뽑으면 되지 않을까요?" 실행이 AI의 속도로 늘어나는 한, 사람이 모든 지표를 확인하고 원인을 쫓는 방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실행이 늘수록 답은 더 늦어지고, 늦게 나온 답은 다음 실행에 반영되지 못합니다.
3. 에이전틱 그로스를 움직이는 4가지 조건
에이전트를 만드는 일과 에이전트가 실제 비즈니스에서 일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성장을 맡기려면 맥락, 실행 능력, 통제, 피드백이 모두 갖춰져야 합니다.
맥락: 우리 회사의 언어로 데이터를 읽는다
데이터를 읽는 것과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같은 '활성 사용자'라도 어떤 회사는 로그인 기준으로, 어떤 회사는 결제 기준으로 셉니다. 이 차이를 모르는 에이전트는 그럴듯하지만 틀린 답을 내놓습니다. 지표의 정의, 이벤트의 의미, 비즈니스 규칙을 에이전트가 참고할 수 있게 정리해 둔 층을 시맨틱 레이어(지표와 용어의 뜻을 모아 둔 공통 사전)라고 부릅니다. 같은 질문에 AI가 매번 다른 답을 내놓는 이유는 LLM 위키란?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실행 능력: 분석에서 멈추지 않는다
분석 결과를 보여 주는 데서 끝나면 사람의 할 일이 하나 늘어날 뿐입니다. 세그먼트를 만들고, 메시지를 보내고, 실험을 여는 실제 도구와 이어져야 분석이 성과로 이어집니다. 원인을 찾은 에이전트가 그 자리에서 대응안까지 실행할 수 있어야 '발견'과 '실행' 사이의 며칠이 사라집니다.
통제: 어디까지 맡길지 사람이 정한다
실행을 맡기는 만큼 경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에이전트가 어떤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권한), 어떤 행동은 자동으로 하고 어떤 행동은 사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지(승인 규칙), 무엇을 했는지 나중에 확인할 수 있는지(기록)가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통제가 없으면 아무리 똑똑한 에이전트라도 실제 업무를 맡길 수 없습니다. 에이전트에게 권한을 줄 때 생기는 위험과 대안은 AI 에이전트 보안이 걱정된다면?에서 정리했습니다.
피드백: 결과가 다음 판단으로 돌아온다
실행 결과는 다음 판단의 입력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긴 메시지와 진 실험이 기록되고, 그 기록이 다음 실행을 고르는 근거가 될 때 비로소 배움이 쌓입니다. 결과를 리포트로만 쌓아 두면 에이전트는 매번 처음부터 다시 판단합니다.
네 가지 중 하나만 빠져도 순환이 멈춥니다. 맥락이 없으면 판단이 틀리고, 실행 능력이 없으면 보고서로 끝나고, 통제가 없으면 맡길 수 없고, 피드백이 없으면 배우지 못합니다.
4. 실제로 달라지는 것: 직군별 장면
에이전틱 그로스가 자리를 잡으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사람의 시간이 어디에 쓰이느냐입니다.
그로스·프로덕트 담당자. 지금은 캠페인 하나를 바꾸려 해도 데이터 추출, 세그먼트 설정, 문구 작성, 발송 승인을 사람이 차례로 거칩니다. 에이전틱 그로스에서는 담당자가 먼저 맡길 범위를 정합니다. 기존 세그먼트 안에서 문구와 발송 시간을 바꾸는 실험은 에이전트가 바로 실행하고, 새 고객 묶음을 만들거나 할인 혜택을 거는 일은 담당자의 승인을 받도록 정하는 식입니다. 그러면 작은 실험은 에이전트가 하루에도 여러 번 돌리고, 담당자의 시간은 할인 폭이나 타깃 확대처럼 비용과 위험이 걸린 결정에 쓰입니다.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붙잡을지 정하는 일이 담당자의 새로운 핵심 업무가 됩니다.
데이터 리더. 지금은 쏟아지는 분석 요청을 하나씩 처리하는 것이 데이터팀의 일입니다. 에이전틱 그로스에서는 에이전트가 참고할 맥락을 설계하는 일이 중심이 됩니다. 지표 정의와 이벤트 설계, 권한 규칙을 관리하고, 에이전트의 판단이 맞는지 검증합니다. 데이터팀의 성과도 처리한 요청의 개수보다 조직 전체가 얼마나 빨리 배우는지로 측정하게 됩니다.
ThinkingAI의 Agentic Engine은 이 흐름을 행동 데이터 위에서 하나의 에이전트 루프로 잇습니다. 유저 행동 분석부터 운영 자동화와 결과 검증까지 실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Agentic Engine 가이드 (2): 그로스 루프 완성하기에서, 고객 행동을 신호로 삼아 실행하는 방식은 트리거 마케팅이란?에서 볼 수 있습니다.
5. 경쟁력은 '빨리 만드는 것'에서 '빨리 배우는 것'으로
AI가 실행 비용을 낮추면서 누구나 많이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많이 만드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같은 AI 도구를 쓰는 두 회사의 격차는 실행 하나하나에서 무엇을 배워 다음 실행에 옮기느냐에서 벌어집니다. 한 분기에 실행과 학습을 네 번 오가는 팀과 열두 번 오가는 팀은 분기 말에 서로 다른 지식을 갖고 다음 분기를 시작합니다.
앞의 비교표에서 에이전틱 그로스의 속도를 정하는 것을 '결과에서 배우는 속도'라고 적었습니다. 에이전틱 그로스는 AI를 더 많이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배우는 속도를 실행 속도에 맞추자는 이야기입니다. 맥락, 실행 능력, 통제, 피드백은 그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건입니다.




